퇴사하고 잘되면 “장을 지진다” 했지만…3D프린터업계 샤오미 우뚝 [3D박스①]

7개월간 금형 설계하다 돌연 3D프린터 제조 창업
3D 출력물 팔아 3개월 만에 첫 매출
2017년 열흘 만에 매출 1억원 돌파

3D박스 정선필 대표
3D박스 정선필 대표

창업 세계에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 불리는 시기가 있다. 사업한지 3~5년쯤 되는 때다. 이 시기 대부분의 기술창업 기업들은 자금난에 시달린다. 정책자금, 제2금융 등 각종 대출을 모두 끌어다 쓰고 돌려막기를 하다 절반쯤은 백기를 들고, 절반은 살아남는다. 2014년 창업한 3D프린터 제조사 ‘3D박스’는 이제 4년차에 접어들었다. 창업 4년차 제조업 기업의 생존율은 평균 49.8%. 이제 절반의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3D박스 정선필 대표를 처음 만난 건 2년 전이다. 당시 정 대표는 개인사업자였고, 첫 제품을 막 시장에 내놓은 터였다. 이후 비교적 탄탄대로를 걸었다. 법인 설립 첫해엔 1억5000만원, 이듬해인 2016년엔 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1월1일부터 10일까지 열흘 동안에만 1억5000만원의 매출을 냈다. “올해는 좀 풀릴 것 같다”는 그의 얼굴에는 한결 여유가 생겼다.

마냥 장밋빛 전망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박날 거라 믿었던 주변 사업가들이 하나둘씩 쓰러져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업의 무서움도 알았다. 초기엔 주변에 창업을 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3D프린터로 제조업에 뛰어든 30대 청년사업가 정선필을 만나 대한민국 창업 현주소를 들어봤다.

– 2년 전보다 사무실이 꽤 넓어졌네요. 사무실 얘기부터 해보죠. 어떻게 인천에 자리를 잡게 됐나요?
“집에서 가까워서였죠. 임대료가 저렴하기도 했고요. 처음 임대했던 사무실은 서점 지하였어요. 보증금 없이 월세 15만원이었죠. 당시 저희 직원이 서점 아들과 연애 중이었는데, 사장님이 싸게 내주셔서 들어갔어요. 두 번째 사무실은 인천 계산동에 있는 35평 사무실로 3층에 있었어요. 그때 월세가 60만원이었죠. 거기서 직원이 6명까지 늘어나면서 2층도 임대를 했어요.”

– 그럼 지금은 사무실을 두 개 쓰고 있는 건가요?
“네. 인천 작전동에 있는 삼경무역 건물 3층에 들어와 있어요. 계산동 사무실에선 3D프린터 출력물을 만들고, 여기선 필라멘트와 프린터 제조를 해요. 지금 임대 중인 공간은 총 170평 정도 되는데, 월세는 다해서 300만원 정도밖에 안 돼요. 사무실이 춥긴 해도 실속은 있어요.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이 ‘뭐 이런 곳에 사무실이 있냐’며 핀잔을 주는 것 빼면요”

3D박스
3D박스

– 3D 프린터 제조라고 하면 상당히 전문적인 분야로 보이는데, 창업하시게 된 계기를 들려주세요.
“대학에서 전기전자를 전공하고 에이시스라는 금형회사 설계팀에 들어가 7개월가량 근무했어요. GM 자동차 금형 설계를 했죠. 직원은 100명 정도 됐고, 설계팀에만 20명 정도 있었어요. 당시 회사를 다니면서 취미로 3D프린터 모델링 사이트를 운영했죠. 3D프린터 출력도 종종 해주고요. 3D프린터에 관심이 많아서 처음에 한 대를 샀다 나중에 10대까지 갖고 있었어요. 알바 식으로 3D프린터 출력을 해주고 돈을 벌었는데, 하다 보니 ‘이거 되겠다’ 싶더군요. 전문적으로 해봐도 괜찮겠다 싶어 회사를 나왔죠.”

3D박스와 삼천리자전거의 콜라보레이션 모습. 3D프린터 출력물을 자전거 부품으로 썼다.

– 얼마를 가지고 시작하신건가요?
“일하면서 모아둔 500만원으로 시작했죠. 그 돈으로 3D프린터 사고, 홈페이지도 만들고요.”

– 창업을 위해 그만둔다고 하니 상사들 반응은 어땠나요.
“‘잘되나 보자! 잘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였죠”

– 그런데 이 정도면 상당히 잘 됐네요.
“운이 굉장히 좋았죠. 하지만 힘든 것도 사실이에요. 사람도, 제품도, 사업 환경도요.”

– 환경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사업 잘 안 됐을 때 시선이 너무 안 좋아요. 정부 자금 끌어다 써놓고 실패했다는 낙인이 찍히죠.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사업하면 더 힘들어요. 이런 부분을 정부에서 개선한다고 하는데 얼마나 될진 모르겠어요. 대표자 연대보증만 해도 그래요. 대출기관에서 평가 점수가 아주 높게 나와야 대표가 연대보증에서 빠질 수 있어요. 어쩔 수 없죠, 담보가 없으니까요. 열악한 환경에서 사업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저도 처음에 창업했을 땐 주변에 많이 권장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만류하고 싶어요. 그동안 친하게 지냈떤 대표들이 파산신청하고, 연락 두절되는 걸 보니 더더욱 그래요.”

– 창업자들은 보통 어떤 과정을 거쳐 폐업하나요.
“보통 갓 창업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지원 규모는 1억원 안팎이에요. 이걸 다 쓰고 나면 분명히 돈이 모자란단 말예요?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이때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을 통해 대출을 받아요. 그러면서 대표자의 신용이 날아가기 시작하죠. 지켜본 바로는 창업자의 95% 이상이 이 루트를 밟고 있어요. 정부 지원이 끝난 시점에서 매출을 내지 못하고 돈이 더 필요하다면, 현실적으로 사업을 접는 게 맞다고 봐요.”

– 최근 1~2년 사이 3D프린터 회사들이 정부 지원을 많이 받지 않았나요?
“그랬죠. 그런데 정부 지원을 받은 업체들 대부분은 폐업하거나 영세해졌어요. 제조사가 유통회사로 전락한 경우도 있고요. 저희도 정부 지원 받은 적 있죠.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청년창업 사관학교 사업 5기에 선정돼 기숙사에 지내면서 경영 수업도 듣고 그랬어요. 그때 1억2000만원을 지원받았어요.”

– 꽤 큰 금액이네요. 자금난 해결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겠어요.
“정말 큰 금액이고, 도움도 많이 됐죠. 그런데 본말이 전도된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비용 정산이 정말 까다로웠거든요. 업무에 필요한 노트북을 사려면 견적서를 낸 다음에 중진공이 직접 판매처에 입금을 해주는 식이었어요. 서류 작업도 정말 복잡했죠. 그런 사소한 문제보다 중요한건 사업에 임하는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아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나야하는데, 지원금이 있으니 ‘이걸 어떻게 쓰지’란 생각이 먼저 드는거예요. 헝그리 정신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래요.”

– 앞으로 정부 과제를 신청해볼 계획은 없으세요?
“글쎄요, 지원 사업 심사 과정이 무척 까다로워요. 프레젠테이션도 여러 번 해야 하죠. 한 과제를 준비하는 데만 그 정도인데, 10개를 신청한다 치면 6개월은 그냥 날리는 거예요. 사업 방향이랑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거죠. 제가 거기 몰두했다간 큰일 나죠. 그렇게 연명해온 업체들이 망가지는 걸 지켜보기도 했고요.”

3D박스 프린터로 출력한 조형물.
3D박스 프린터로 출력한 조형물.

– 창업했을 당시와 지금 마음가짐에 달라진 게 있다면요.
“창업의 위험을 알게 됐죠. 청년취업 사관학교 시절 만난 대표들 거의 다 성공할 줄 알았어요. 외부에서 청년창업사관학교 출신들이 잘된다는 얘기들도 했고요. 그럼에도 다들 힘들어하는걸 보고 창업의 위험을 알게 됐죠. 저희도 지원금으로 연명했다면 아마 살아남기 힘들었을 거라고 봐요. 사업하며 느끼는 또 한 가지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거예요. 원체 배우는 게 빠른 편이라 빨리 배우고 싫증을 내는 편이었는데, 사업은 하면 할수록 어려워요. 진짜 성공할 때까진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고요.“

– 그만둬야 하나 고민한 적은 없었어요?
“있죠. 하지만 계속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매출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었고, 잘될 여지들이 많았죠.”

– 계속 사업할 수 있는 원동력이 뭐라고 보나요.
“일단 3D프린터 관련된 일이 재밌어요. 재밌으니 할 수 있는 거죠. 대학에서 전자전기를 전공하고 회사를 설계팀으로 갔을 때부터 길이 이쪽으로 정해져있지 않았나 싶어요.”

– 자신만의 사업 철학 같은 게 있다면요.
“실패할 거란 두려움에 쫄지 않으려고 해요. 성공할거라 믿고 나가도 잘 안 되는 판인데, 잘 될 거라 생각해야죠”

– 다시 태어나도 창업을 선택할 건가요.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사업이 잘 될 땐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자금이 어려울 땐 하고 싶지 않아요. 만약 다시 태어나 창업을 한다 해도 제조업을 할 것 같긴 한데…. 소규모로 하고 싶은데 하다 보면 직원들이 또 늘어날 테고…. 생각해보니 아마 할 것 같네요. 하고 싶다기 보단 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3D박스②]에서는 3D프린터 산업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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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원 기자
이혜원 기자

남들이 안 쓰는 뉴스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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