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플] 20만원짜리 영상으로 15억 펀딩한 비결은

 

한 스타트업이 유명 디자이너의 25인치짜리 캐리어를 들고 거리로 나가 행인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 캐리어, 얼마짜리로 보여요? 맞추면 선물로 드릴게요” 이 제품은 국제디자인어워드에서 수상경력을 가진 홍익대 나건 교수가 디자인을 했고, 캐리어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사람들은 최소 20만원에서 최대 40만원을 예상했다. 정답은 4만9000원이었다.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너무 싸게 파는 것 아니에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와디즈’에서 요즘 가장 반응이 뜨거운 샤플의 캐리어다. 2만여명이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해 15억원을 모았다. 서포터 숫자와 펀딩 금액 모두 와디즈 크라우드펀딩 사상 최고 기록이다. 샤플의 프로젝트를 보며 궁금해졌다. 어떻게 이런 제품을 이 가격에 팔 수 있는지. 유통 단계를 줄이고 직접 생산해 직접 판매해 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었지만,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샤플의 문을 두드렸다.

샤플의 진창수 대표는 자신이 “상식적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통 과정만 단순하게 한다면 이 가격으로 디자이너 제품을 팔 수 있다는 것이다. 진 대표가 펼치는 유통론은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이상적으로 들린다. 제품 가격의 80%를 차지하는 유통비용을 모두 덜어내면 싸게 팔 수 있다는 얘기다.

 

i-DB와 인터뷰 중인 샤플 진창수 대표. ⓒ i-DB
i-DB와 인터뷰 중인 샤플 진창수 대표. ⓒ i-DB

 

샤플의 제품은 캐리어로 가장 유명한 브랜드와 같은 소재(ABS)를 썼고, 사양도 유사하지만 가격은 80% 이상 싸다. 진창수 대표는 “샤플과 비슷한 가격대의 제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마음에 드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싸다고 무조건 사지는 않는다. 기본적인 전제는 ‘내 마음에 드는데도’ 싸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각종 비용을 덜어냈다. 이번 캐리어는 첫 프로젝트라 나건 교수에게 직접 디자인을 의뢰했지만, 다른 제품들은 온라인으로 제품 디자인을 모집해서 소비자들의 선호도를 조사하고 일정 수준 이상 수요가 확인된 제품만 생산해서 소비자들에 직접 배송한다. 오로지 온라인에서만 판매하기에 매장 운영에 따른 임대료나 인건비, 관리비 부담이 없다. 과도한 포장도 덜어냈다. 제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포장만 한다.

샤플의 제품은 오직 샤플에서만 판매한다. 다른 유통채널을 배제한 독점판매다. 유통업자에 넘기면 더 많은 제품을 팔 수 있지만,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유통업자에게 판매를 맡겨 가격을 올리는 대신, 조금 힘들더라도 직접 팔아 마진을 덜어내겠다는 것이다. 진 대표는 “샤플 캐리어는 광저우 공장에서 생산해 현지 물류센터에서 전 세계로 직배송한다. 유통채널은 단일화하고 구매고객은 다변화시키자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샤플은 와디즈 펀딩 9억원 돌파 기념으로 기존 캐리어의 바퀴를 한 단계 높은 사양으로 교체했다. 유통혁신에 동참해준 소비자들에 대한 감사 표시다. ⓒ i-DB
샤플은 와디즈 펀딩 9억원 돌파 기념으로 기존 캐리어의 바퀴를 한 단계 높은 사양으로 교체했다. 유통혁신에 동참해준 소비자들에 대한 감사 표시다. ⓒ i-DB

 

20만원 들여 만든 영상, 페북에서만 70만명이 봤다

샤플이 크라우드펀딩에서 ‘대박’을 터뜨리는 데는 홍보 영상도 한 몫 했다. 이들은 거리로 나가서 행인들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생생한 반응을 영상으로 담았다. 20~40만원을 예상했던 이들은 4만9000원이라는 가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상에는 놀라는 외국인들의 표정이 잇따르고 강력한 타이포그래피가 등장한다. “이제 당신이 놀랄 차례입니다”라는 자신감 넘치는 문구다. 이 영상은 페이스북에서만 조회수가 60만건을 기록했고, 6000명이 공유했다.

영상은 15초짜리 TV광고처럼 감각적이다. 영상 제작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광고를 보고 “돈 좀 썼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샤플에서 20만원을 들여 만든 저예산 영화(?)다. 이태원에서 길가는 외국인들을 붙잡고 찍었다. 무엇이든 직접하는 것이 이 회사의 모토 중 하나다. 진 대표는 “영상은 제조사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샤플의 혁신을 담아내는 일이다. 우리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누군가에게 맡겨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나건 교수가 디자인한 샤플의 백팩과 캐리어 ⓒ i-DB
나건 교수가 디자인한 샤플의 백팩과 캐리어 ⓒ i-DB

 

“유통 패러다임을 바꾼다…한국의 페이스북·아마존 될 것”

진 대표는 제품 디자이너 출신의 창업자다. 이라크 파병 중 영감을 얻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2013년샤워용품을 개발해서 미국 크라우드펀딩사이트 킥스타터에서 5만5000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경험이 있다.

그가 추구하는 사업은 단순하다. 좋은 디자인의 제품을 누구나 싸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이름이 붙은 제품은 비싸다. 진창수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디자인을 제품이 아닌 ‘작품’으로 생각한다. 양산하기 까다로운 경우가 많고, 가격을 깎는데도 보수적이다. 제품 가격은 자연스레 올라간다.

이 같은 고민에서 탄생한 것이 디자이너와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플랫폼 서비스 ‘샤플’이다. 전 세계의 디자이너들이 샤플에 자신의 디자인을 업로드 한다. 그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잠재 고객들이 ‘좋아요’를 누른다. 좋아요 숫자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샤플이 제품을 생산에 들어간다. 좋아요 숫자에 따라 디자이너에게 지급되는 저작료율이 3~10% 사이에서 정해진다. 진창수 대표는 이를 ‘유통 혁신’이라고 말한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골라서 구입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유통회사가 선정한 제품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 거예요. 샤플에서는 생산 전 단계부터 소비자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고를 수 있어요. 진짜 마음에 드는 제품을요.”

샤플의 직판 플랫폼 구조. ⓒ SHAPL
샤플의 직판 플랫폼 구조. ⓒ SHAPL

진 대표는 지금이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라고 말한다. 그는 “소비자들의 기대는 모든 것을 작게 만든다. 소비자들은 철저하게 냉정하다. 그 기대를 기쁨으로 바꾸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면서 “샤플이 하고 있는 일은 유통의 혁신이다. 한국에서도 페이스북이나 아마존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만든 새로운 패러다임을 나누고, 소비자들에게 기쁨을 나누는 회사이고 싶다”고 말했다.

 

# 샤플 캐리어, 와디즈 사상 최고 펀딩 기록

샤플의 크라우드펀딩 결과. [출처=와디즈 홈페이지 화면 캡처]
샤플의 크라우드펀딩 결과. [출처=와디즈 홈페이지 화면 캡처]

샤플의 펀딩 기록은 서포터 숫자 면에서나, 금액 면에서나 와디즈 프로젝트 사상 역대 최고 기록이다. 금액 면에서 역대 최고 기록은 음악이 들리는 선글라스 ‘정글 팬써’가 세운 12억8400만원이었다.

와디즈 마케팅실 최태형 프로는 i-DB에 “단일 품목으로 한국에서 10억을 넘긴다는 것은 제품과 플랫폼 모두에 큰 의미”라면서 “메이커 입장에서는 제작 전 안정적으로 수요를 측정하고 제작해 재고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플랫폼 입장에서도 역할을 잘 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혜원
이혜원

기자

남들이 안 쓰는 뉴스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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