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가 장인을 만든다: 세운상가 기술장인 나호선 엘렉트릭 대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부품들의 도서관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한 장 면 ⓒ네이버 영화

2015년 개봉해 전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하고, 최근 개봉한 속편  또한 480만명을 관객 몰이에 성공한 영화 ‘킹스맨’. ‘킹스맨: 시크릿에이전트’에서는 오랜 전통을 가진  양복점에 있는 비밀의 문을 열면 국제 비밀기구 ‘킹스맨’ 사무실이 펼쳐졌다.  클래식한 진열장 안에 가지런히 정돈 돼 있는 물품들은 킹스맨의 역사와 동시에 이들이 갖춰야 할  ‘매너’ 중 하나를 보여준다.  킹스맨 면접을 진행하는 동안 해리 하트(콜린 퍼스)에 의해 변해가는  에그시 언윈(태런 에저튼)의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세운상가에 있는 나호선 장인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영화 속 이미지가 겹쳐 보였다. 영국 양복점 보다는 198~90년대 홍콩 영화 세트장과 더 가까워보이지만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독특한 공간이다. 일반인들에게 낯설기만한 이 공간을 경험할 일이 생겼다. 이곳의 역사를 함께한 수리 장인이 주인공. 양쪽 벽면을 가득 채운 부품 상자들은 이곳의 오랜 역사를,  작업실에 울려퍼지는 음악과 늘 그가 작업 전에 입는다는 앞치마는 수리 장인의 ‘매너’가 떠올랐다.

 

벽면을 가득 채운 서랍 안에는 부품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한 나호선 장인.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작업용 앞치마를 벗는 일이 없다고.

 

작업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음반과 오디오. 오디오의 전기 장치는 나호선 장인이 직접 손 본 것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그가 작업을 할 때 꼭 챙기는 것 중 하나다

 

부품명, 구입일, 단가 등을 기록해 놓아 도서관에서 책을 찾을 때처럼 색인 번호를 보고 금방 부품을 찾아냈다

 

장인의 수리법, “냄새(?)로 문제점을 알아냅니다”

그렇다면 나호선 장인은 언제부터 어떻게 장인으로 불린 걸까. 서울시에서는 “세운상가의 역사를 함께한 수리 장인들 중 추천을 받아 16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앞으로 청년 창업가들과 힘을 합쳐 이들의 기술과 창업가들의 아이디어를 결합한 서비스 및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예정.

나호선 장인은 대부분 기업이나 대학교 실험실의 산업용 장비들을 수리한다. 전자 제품 수리도 가끔 맡지만, 그 수는 적은 편이다. 제품의 규모만 생각했을 때 산업용 장비들과 가정용 전자 제품을 고치는 건 다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기계나 제품에 들어 있는 전기 장치에는 큰 차이가 없다. 전기회로도만 보면 문제점을 찾아내기라도 한다는 것일까?

무엇이 잘못 됐는지 한번 살펴볼까? 전기회로도를 보면서 꼼꼼히 수리 방법을 찾는 건 기본

 

주로 사무실보다는 별도의 작업실에서 작업한다. 전기 테스터, 전압기, 자주 사용하는 부품, 현미경 등이 이곳에 있다. 현미경은 작은 부품들의 상태를 좀 더 확실하게 살펴볼 때 쓴다. 디지털 멀티미터의 경우 텍트로닉스 제품을 가장 선호한다

 

망가진 부품은 육안으로 찾아내기도 하고, 냄새(?)로도 찾아낼 수 있다

“제품의 전기 회로도를 보고, 부품이 제대로 자리하고 있는지를 살핍니다. 그 다음에 망가진 부품이 없는지 봐요.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건 냄새를 맡는 건데, 부풀거나 그을려 있다면 냄새가 나요. 그럼 거기에 맞는 부품을 찾아 사용하는 거에요.”

 

자주 사용하는 부품들은 바로 꺼내 쓰기 쉽도록 모아두었다

 

인두는 늘 쓰던 것, 작업 공구는 늘 손에 익은 것으로

 

세운상가키드, ‘다시 세운’에서 시작하다

197~80년대 세운상가는 최대의 전성기를 누리던 때였다. 음향, 전자 기기의 메카이자, 그 당시 라디오 키트의 부품은 세운상가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으니, 세운상가의 위상은 알 만하다. 하지만 나호선 장인이 돌아온 후 1990년대 세운상가는 여러 차례 부침을 겪었다. 끊임없이 철거와 철회를 반복했던 것. 나호선 장인 역시 세운상가에 있던 시간 동안 몇 차례 위치를 옮겼지만 떠나지 않았다. 이곳을 떠나는 삶을 ‘피난’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누군가에는 생활을 넘어, 생계를 책임지는 산업이자 삶인 공간이다.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나호선 장인

최근에는 제품 수리 외에도 외부 제품 수리나 부품 판매 중개 등 세운상가 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도맡아 하고 있다. 어두운 사무실 안을 지키는 삶이 아니라, 직접 상가 사람들을 만나 그 방향을 찾고 있다. 세운상가에 상주한 젊은 창작가들과 스타트업과의 협업과 수리 기술을 DB화하는 방법도 그중 하나다.

“세운상가 장인들이 하던 일을 이제까지 DB화 한 일은 없었어요. 고장난 물건을 버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수리의 가치를 찾고, 산업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일을 이제 시작입니다.”

 

 

정은주
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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